중근이 거동 봐라, 글 공부에는 전혀 관심 없고
총을 들고 산에 올라 수렵에만 열중할 제,
나르는 새도 단번에 쏘아 맞히고,
달리는 짐생도 대번에 거꾸러뜨리니
백발백중 명사수라.
하로난 동무 하나이 염려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님은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신데
너는 왜 하필 무식 하등한 직업을 자처하는다?”
안중근 하는 말이
“옛날 초나라의 패왕 항우는
글 공부를 안했어도 만고의 영웅이라.
항우가 장부라면 나도 또한 장부일러니
다시는 그런 말 마라.” 일갈하니,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타고난 영웅이 분명쿠나.
어화 세상 사람들아,
이제부터 우리가 안중근의 거사를
판소리로 한번 엮어볼 터인즉,
“좋다, 잘한다, 아먼, 그렇지.”
추임새들 넣어가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보세.
안진사가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그대로 앉아 포위 공격을 받게되면
저 많은 적군에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을 터,
오늘밤 우리가 먼저 나가서 적병을 기습한다.”
꼭 끼 오 --- 꼭 끼 오 ---
새벽밥 얼른 지어 먹고 병(兵)을 진발(進發)하는디
붉은 옷을 걸쳐 입은 홍의장수 안중근이
대원 여섯 명을 데리고 앞서 수색을 해나가니
바로 눈앞에 적병의 대장소가 나타난다.
안중근 사방을 둘러 보더니
“지금 적진을 습격한다면 큰 승리를 거둘수 있을터 다들 준비하시오.”
대원들이 놀라면서 “우리는 불과 일곱 명인데 어찌 저들을 대적하리오?”
겁을 먹고 주저하니, 안중근이 지시한다.
“병법에 이르기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한다 했소.
저들은 오합지졸 군기가 빠져있어
우리가 먼저 기습을 하면 파죽지세로 물리칠 터,
모두들 망설이지 말고 내 말대로 따르시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벼락같은 총성 소리에 천지가 진동하고
탄환이 우박처럼 적의 대장소에 떨어지니,
미처 대비 못한 적이 몸에 갑옷도 걸치지 못하고
손에 무기도 챙길 겨를 없이 허겁지겁 달아난다.
전리품을 수거한즉, 군기(軍器)와 탄약이 수십 발에
포획한 말이 수백 마리요, 놓고간 군량미가 천여 포나 되었다더라.
아니리 - 불과 7명 병력으로 2만 도당을 물리쳤단 이야기가 믿기질 않지만, 안중근이 직접 쓴 자서전에 이 사실이 나와 있으니 안 믿을 수 없는 일. 그건 그렇고, 가문좋고 재산많은 집안의 맏아들로 용기있고 자부심 강한 안중근의 청년시절 의협 행각을 볼작시면,
엇모리
나이는 젊고 힘은 넘치고 게다가 기골이 빼어나고,
싸움이라면 말싸움부터, 눈싸움에 기세싸움, 주먹 싸움에 팔뚝싸움,
심지어는 총싸움까지 지고서는 못 배긴다.
무협 청년 안중근이 평생 즐겨 하던 일이 네 가지가 있는디.
첫째는 친우결의요, 둘째는 음주가무요,
셋째는 총포수렵에, 넷째는 기치준마라.
어디사는 누구협객 소문을 듣기만 하면
원근을 가리지 않고 총을 지니고 말을 달려 무작정 찾아가서
과연 그가 의협자면 바로 속마음 털어놓고
함께 실컷 술 마시고 가무를 즐기는구나.
하루는 중근이 동무들과 노루 사냥을 하던 중
총구멍에 탄환이 걸려 빼도박도 못하자
쇠꼬챙이로 뚫을려고 마구 쑤셔대다가, 쾅!
벼락 소리에 탄환이 폭발, 휭-----
쇠꼬챙이가 손아귀를 뚫고 공중으로 날아가니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뻔 했다고 하더라.
아니리 - 이 무렵 안중근의 일생에 큰 변화가 오는디, 바로 천주교와의 만남이라. 아버지 안태훈씨가 당시 권력가였던 어윤중이, 민영준이한테 밉보였다가 사태가 위급해지자 프랑스 신부가 있는 종현성당(지금의 명동성당)으로 몸을 피해 숨었는디, 거기서 천주교 신자가 되어갖고 돌아온거여. 가족들이 모두 입교를 하니 중근도 따라서 입교를 하여 프랑스인 빌렘(홍석구) 신부한테 세례를 받고 본명을 도마(多黙 Thomas)라고 하였것다. 독실한 신앙인이 된 안도마가 빌렘 신부 따라다니며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는디,
중중모리
“형제 자매 여러분,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나에게 별미가 있고, 기이한 재주가 있거날
이 음식은 한번 먹으면 장생불사 하는 음식이요
이 재주를 한번 통하면
누구라도 능히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는 바
형제 자매 여러분,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시오.”
잦은모리
“무릇 천지 만물 가운데 사람만이 존귀한 까닭은
사람의 혼이 신령한 때문이라.
혼(魂)이라고 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는바
첫째는 생혼(生魂)이라 이는 초목의 혼이며,
둘째는 각혼(覺魂)이라 이는 금수의 혼이고,
셋째가 영혼(靈魂)이라 이는 천명의 본성으로서
하느님이 사람의 태중에 부어넣어 주시는 불사불멸 하는 것이라.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집안에는 가장이 있고 나라에는 임금이 계시듯
천지만물 위에는 하느님께서 계시니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삼위일체이시며
전지전능 하시고 지극히 공정 하신지라
착한 일에는 상을 주고 악한 일에는 벌을 주는데
착한 사람은 천당에 올라 영원한 기쁨을 누릴테요
악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끝없는 고통을 받게 될 터
이렇게 높으신 하느님을 의심치 아니하고
몸을 바쳐 신앙하며 만일에 준비하는 것이
우리 모든 인간들의 당연한 본분이라.”
단중모리
이같이 전도를 하고 다닌즉
이 말 들은 사람들 중에는 믿는 이도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이도 열에 예닐곱 명은 있었다고 하더라.
아니리 – 이때여 안도마는 홍신부에게 불란서 말을 배우면서 한국인들을 교육할 천주교 대학을 설립할 것을 의논하고 서울로 가서 뮈텔 주교를 만나 의견을 제출했거날, 뮈텔 하는 말이 “한국 사람 학문 있게 되면 교 믿는 일에 좋지 않습네당. 그런 말 꺼내지 마세용.” 안중근 속으로 분개하며 “교의 진리는 믿을지언정 외국인의 심정은 믿을 것이 못된다.” 불란서 말 배우던 것도 폐하고 말았것다. 이 후 안중근은 신앙인으로서 의롭고 용기있는 행동들을 실천하며 지냈으니, 천주교를 비방하는 금광 감리를 혼자 찾아가 따지다가 일꾼들한테 맞아죽을뻔 한 일, 서울 사는 김참판이 옹진군민 돈 5천냥을 빼앗아 가로챈즉 혼자 찾아가 직접 담판하여 받아낸 일, 또 한哥라는 못된 병영 위관이 교인의 처와 집을 강탈한즉 그 자를 징치하러 갔다가 재판소 검사관과 논쟁한 일... 이렇듯 힘있고 행세하는 놈들 단독으로 찾아가 따질 것 따지고 받을 것 받고, 담판하는 데 선수가 됐지. 세월은 흘러 1904년이 되었는디, 펑! 쉬이이이이잉 쾅!
세마치진양
인천항에 정박한 러시아 함대를
일본 함대가 기습 공격하니
동양에 일대사건 러일전쟁이 터졌구나.
승리한 일본이 기고만장
추밀원 의장 이등박문(伊藤博文)을 대한에 파견,
협박과 강요로 5조약을 체결,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 제도를 실시하니
을사년 늑약이라.
이천만 대한인 민심이 불안할 제
안진사 병이 깊어진지라.
하로난 중근이 아버지께 상의하는디
“일본이 이렇듯 침략을 자행하니
우리도 속히 방책을 세워햐할 터.
청나라 산동과 상해에 동포들이 많이 모여산다 하니
제가 가서 살필 터인즉 아버님께서는 진남포로 옮기셨다
제가 돌아온 연후에 다시 의논드려 결행함이 어떻겠습니까?”
이렇듯 부자 사이에 은밀하게 이주 계획이 정해졌더라.
중머리
안중근 곧바로 길을 떠나
산동지역을 답사한 후 상해로 건너 가서
대한제국 대관 출신 민영익을 찾아갔다
문전에서 하인에게 박대를 당하고,
돈 많다고 소문난 서 아무개를 찾아갔다
일언지하 초면에 거절을 당했구나
안중근이 탄식하다가
하루는 어느 천주 교당에서 뜻밖에 전에 알고 지내던
르각 신부를 만났더라. 르각이 말하기를
“꼬레아 사람들 모두 몽땅 토마스처럼 해외로 도망치멍,
꼬레아는 텅텅 빌 것 이닝, 이는 곧닙 뽕국이 원하는 방.
토마스는 얼렁 당신 나라 꼬레아로 돌아가스왕.”
안중근이 이 말 듣고
“신부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지체 없이 진남포로 돌아온다.
아니리 – 돌아와 보니, 가족들이 진남포에 도착하긴 했는디, 중도에 아버님이 병세가 중해져 세상을 떠나신지라, 중근이 황망하여 서둘러 청계동으로 달려가 식음을 전폐하고 상례를 갖추는구나. 중근이 맹세하기를 평소 즐기던 술을 끊기로 하고 그 기한을 대한 독립의 날까지로 정했것다. 이듬해 3월(1906년), 재산을 전부 정리하고 청계동을 완전히 떠나 진남포로 이사와서 돈의학교 · 삼흥학교를 설립해서 교육사업에 나섰지. 이때여 대한 국민들 사이에 국채보상 운동이 불같이 일어나니, 안중근은 어머니 아내 할 것 없이 시집올 때 가지고 왔던 패물들 다 내놓게 했다고 하더라. 미곡상도 해보고, 석탄상도 해봤으나 실패하고 재산이 바닥이 났지. 그러던 중 1907년(정미년) 봄, 어떤 도인이 찾아왔는디, 자기 이름은 안밝히고 김진사라고만 하면서 하는 말이, “나는 그대 부친과 친교가 두터운 사람이라, 할 말을 전해주고자 특별히 자네를 찾아왔네.”
엇중모리
중근이 반기하야
“어르신 좋은 말씀 주십시오.”
노인이 몸을 꼿꼿이 하더니
“나라가 위란한 이 때에 그대같은 기개있는 사람이
어찌 그냥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려 하는가?”
중근이 자리를 고쳐 앉으며
“그럼 무슨 계책이 있겠습니까?”
노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백두산 넘어 간도와 러시아령 해삼위란 데는
백만이 넘는 한국인이 자립하여 살고 있는바
군의 재주로 그곳에 간다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을터,
내 말을 명심하게.”
중근이 무릎을 꿇고
“어르신, 각별하신 가르침, 반드시 따르겠나이다.”
서로 말을 마치고 작별하였다더라.
헤이그에 당도한다.
회의장에 들어가려 할제 이것이 웬 말이냐,
외교권을 빼앗긴지라 출입을 거부 당한다.
특사단은 각국 기자들에게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고
대한의 독립을 호소하거날,
믿었던 미국과 러시아 마저도 남의 일처럼 외면하니,
울분을 못 참은 이준 특사가 분사하고 말았구나.
약육강식 제국주의 열강들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더라
아니리 - 일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한일 신협약을 맺으니 이른바 정미 7조약이라. 통감의 권한을 강화하고 사법권과 경찰권을 강탈하더니, 군대마저 강제 해산을 시키니 분개한 대한군인들이 일본 군을 상대로 시가전을 벌이거날, 화승총으로 어찌 기관총을 당할소냐. 수십 명이 피살되고 수백명이 부상 당한 중에 남은 병사들은 무장해제를 당했구나.
이때여 안중근은 국권회복을 위한 어떤 비밀모임에 참석코자 서울로 와서 남대문 밖에 머물고 있다가 마침 시가전을 목격하고, 청년지도자 안창호와 함께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구호활동을 했다고 하더라. 군대가 해산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안중근은 이로써 의병투쟁, 무장 독립투쟁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것다.
빠른세마치
안중근 행장을 급히 차려 조국 강토를 떠날 결심을 할제,
정근 공근 두 아우를 불러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의탁하고
어머님께 하직 인사 올린 연후 바삐 기차에 몸을 싣는구나.
압록강 건너 간도 땅에 당도하니
곳곳에 이미 일본군이 주둔하야 발붙일 곳이 없는지라
동쪽으로 계속가니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라.
그곳에는 한국인 청년회가 있어
중근이 청년회 임시 사찰을 맡았더라.
안중근 거동 봐라,
군자금을 마련코자 이범윤을 찾아가 거사를 종용커날
끝내 미적이며 결단을 못하는구나.
안중근 포기않고 동지들을 포섭할 제
엄인섭과 김기룡이 자못 담력이 있는지라.
셋이서 형제의 의를 맺고 연해주 한인촌을 두루 돌며
조국의 참상을 열렬히 토로하고 독립 투쟁을 고무한다.
단중모리
“동포 여러분, 동포 여러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야 황제를 폐하고, 군대를 해산시키고,
철도 광산 산림 천택까지 모조리 빼앗아 갔으니,
어느 누가 이런 분함을 참을 수가 있겠소?
그리하여 우리 이천만 민족이 일제히 일어났거날,
강도의 무리가 우리를 폭도로 몰아 온갖 살육을 자행하니,
이는 모두 일본의 늙은 도둑 이등박문이란 자의 책략이라.
만일 이 도적놈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결국 없어지고 동양 또한 망할 터,
동포 여러분, 동포 여러분
이대로 앉아 무망하게 죽기를 기다리겠소,
아니면 힘을 모아 분발하여 싸우겠소?”
이같이 호소하니, 분기한 청장년들이 따르겠다 나서고,
혹은 병기도 내고, 혹은 군자금을 내어 돕는지라.
그것으로 기초 삼아
한국 최초의 해외 독립군 부대
대한의군이 창설된다.
아니리 – 안중근 자신의 기록에 의하면, 이 독립군 부대 총독은 김두성 장군이요 대장은 이범윤이며, 중근은 참모중장으로 임명되었다고 하는데, 김두성 장군이라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실체가 분명치 않것다.
안중근은 이 무렵 블라디보스톡 해조신문에 긔서라는 글을 발표한 바, 교만을 버리고 단합하는 것만이 국권회복의 길임을 밝히는 동시에 한편으로 홍범도 장군을 만나 독립전쟁을 구상하면서, 갈등관계에 있던 최재형과 이범윤의 연합전선을 성사시켰다고 하더라.
그리하여 1908년 6월, 연합의병 참모중장 안중근이 비밀리에 의병들을 두만강 근처에 집결시키고 국내 진공작전을 시도하는디,
잦은모리
“동지 여러분, 적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나
반드시 독립을 회복하려는 투철한 각오로 나서라.”
해로를 택한 오백 명은 두만강 하구 녹둔에서
중국 배를 몰래 타고 해안으로 상륙해서 갑산에 집결한다.
육로를 택한 삼백 명은 지신허를 출발해서
두만강을 몰래 건너 무산으로 집결한다.
양 부대가 연합하여 회령을 점령한 후
두만강 상류 지역에 거점을 마련한다.
우리들 싸움의 목표는 승패보다는 당위(當爲)라.
최후의 일각까지 정정당당히 싸우라.”
사기 충천한 의병부대 각기 두만강을 건너
경흥에 주둔한 일본군 수비대를 급습한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일본군 수명을 사살하고 수비대 진지를 점령하니
막강 일본군을 상대로 벌인
독립군 최초의 승리로구나.
아니리 – 이 전투에서 안중근 부대가 일본군과 상인 몇 명을 포로로 붙잡았는 디, 안중근이 그 자들을 석방해 주었단 말이시.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 대우를 해준다는 명분으로 말이지. 의병 내부에서 당연히 반발이 나오는디, “일본군들은 우리를 잡으면 참혹하게 죽이는데, 우리가 잡은 놈들을 도로 풀어주면 우리 목적은 무엇이란 말이요?” “그렇지 않다. 우리마저 저들처럼 야만적인 행동을 해서 되겠는가? 만국공법을 준수해서 열강의 호응을 얻어야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설득을 했지마는, 쉽지 않은 일이라. 형제의 의를 맺었던 엄인섭마저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떠나버리는 사태가 발생했것다. 아니나다를까, 석방된 왜놈들 밀고로 독립군 위치를 파악한 일본군 정예부대가 사방에서 포위해 들어오는디, 몇 시간을 치열하게 맞서 싸워보나 무기의 열세에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
진양조
날은 저물어 캄캄하고 장대비마저 쏟아지니
지척을 분간키 어렵구나.
의병들 험한 산속을 헤맬적에 신발은 벗겨져 맨발인디,
매서운 칼바람과 굶주림에 몇날 며칠이 지났던고.
대원들 모다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사람 불과 네 명 이라.
어찌할지 방도를 의논할 제
“나는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야겠소.”
“차라리 일본군 포로가 되면 살 수 있지 않겠소?”
“왜놈들에 목숨을 구걸하느니 자결하는 것이 낫겠소.”
삼인삼색 딴마음이로구나.
안중근 후회막심 괴로워하다, 문득 시 한 수를 떠올리고 읊는디
“사나이 뜻을 품고 나라 밖에 나왔다가
할 일을 그르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바라노니 동포들아 피 흘려 맹세커날
세상에 의리 없는 귀신일랑 되지 말자.”
단중모리
안중근 분연히 일어서며 병사들을 향해 말을 한다.
“나는 홀로라도 이 산을 내려가서
일본군과 한바탕 장쾌하게 싸워서
대한 국민의 의무를 다한 다음에는
죽어도 한이 없으리라.”
총을 번쩍 들고 성큼 걸어 내려가니
병사 한 사람이 급히 뛰어 달려와
중근의 소매를 잡고 만류를 하는구나.
“대장! 대장의 생각은 크게 잘못되었소.
뒷 날 기회를 기다려 큰 일을 도모해야지
만금처럼 귀한 목숨을 어찌 그냥 버리려 하오.”
안중근이 병사 손을 마주 잡고
“동지! 공의 말이 참으로 지당하오.
옛날 초패왕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천하에 항우가 다시 없었으니 어찌 아깝지 않으리오.
오늘날 안응칠이 한 번 죽는다면
다시 없을 것이 분명한즉, 내 공의 말을 따르리다.”
이리하여 네 사람이 탈출을 시도할제
열 이틀 동안에 단 두 끼만 먹고
천신만고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더라.
아니리 - 도망치는 중에도 안중근은 병사들을 타일러 하느님 전도를 해서 신부 대신 세례를 주었다고 하더라. 하느님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날 외진 산속에서 한 초가를 발견한 바, 귀인의 도움으로 겨우 두만강을 건널 수 있었것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오니 동포들이 위로하며 환영회까지 열어주었지만, 패전지장이 면목이 없었지. 와신상담! 그 해 12월, 안중근은 안창호가 조직한 공립협회의 블라디보스토크 지회에 참여해서 대동공보사를 중심으로 국내외 정세를 파악하며 때를 기다려보나, 러시아마저 일본의 압력으로 한국인의 의병 활동을 탄압하는지라, 해가 바뀐 1909년 3월, 연추로 돌아온 안중근, 구국운동에 투신할 동지들을 모아 비밀단체를 결성하고 결의를 하는디,
중모리
안중근이 제안한다.
“오늘날 우리 대한이 멸망할 지경을 당해
이천만 우리 동포가 일심 단체 하여
생사를 불고해야만 국권을 회복할지라.
오늘 우리들이 손가락을 끊어
맹세를 같이 지어 증거를 보인 다음
몸과 맘을 하나로 묶어 나라 위해 목숨을 바쳐
기어이 목적을 달성함이 어떻겠소?”
동지 열한 명이 모두 다 동의한즉,
안중근 거동 봐라.
태극기를 펼쳐 놓고, 왼 손 약지를 끊어 맹세를 선보이니
다른 동지들도 따라 나서 약지 손가락 한 마디를
분연히 잘라내니, 선혈이 낭자하다.
그 피로써 먹을 삼아 글자를 써나갈제
大 字에 클 韓 자, 홀로 獨 자에 설 立 자
0 0 ‘大 韓 獨 立 ’ 이라.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두 팔을 번쩍 들어 하늘에 고한 연후
각자 제 갈 길을 가는구나.
아니리 - 이 대한독립 결의 맹세를 일컬어 손가락을 잘랐다 해서 ‘단지(斷指)동맹’이라고 하는바, 안중근은 이를 ‘바를 正자 하늘 天자’ ‘정천동맹(正天同盟)’이라 명명했것다. 열두명 맹원 중에는 예전 결의형제를 맺었던 김기룡이 있었고, 또 백규삼이라는 맹원에게는 자른 손가락과 혈서한 태극기를 보관케 했다고 하더라. 그리고는 또 반년이 지난 1909년 10월, 엔치야(연추, 노보키예프스키)에 머물고 있던 안중근은 허송세월에 대한 자책과 함께 혼자서 몰래 사격연습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디,
빠른잦은모리
하루는 대동공보사의 이강 주필로부터
긴급 전보가 날아온다.
“화급한 일이 생겼으니 지체 말고 바로 즉각
블라디보스토크로 귀환하시오.”
안중근 예감에 “때가 왔구나.” 진정키 어렵더니
떠날 채비를 하는지라. 어떤 지인 묻는 말이
“아니, 무슨 까닭으로 이리 바삐 떠난단 말이요?”
“나도 까닭을 모르겠소. 갑자기 마음이 번거로워
그냥 떠나려 하는 것이오.”
“그럼 지금 가면 언제 돌아올 것이오?”
“돌아 오지 않을 것이오.” 괴이히 여기거날,
안중근 작별하고 급히 길을 떠나는구나.
아니리 - 블라디보스토크에 당도하여 은밀히 알아본즉 불구대천의 원수 이등박문이 동양제패의 야욕을 품고 북만주를 시찰하러 온다는 정보라. 안중근, 늙은 도적 끝장낼 생각을 하니 춤이라도 출만큼 기쁜 마음이나 공연히 떠벌렸다 낭패되기 십상이라, 속내를 감추고 극비리에 계획을 세우는디, 거사 장소를 할빈으로 잡고 우덕순이라는 의병 동지와 동행키로 된 바, 10월 21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역을 출발할제, 이강이 배웅을 나온지라, 안중근, 이강의 손을 굳게 잡고 “이번 길에 꼭 총소리를 내리다. 뒷일은 동지가 맡아주오.” 작별을 하고,
잦은모리
안중근과 우덕순이 각기 권총을 휴대하고
3등 열차 칸에 올라 할빈으로 향한다.
칙 폭 칙 폭, 칙칙 폭폭 칙칙 폭폭, 뛰----
가던 도중에 쑤이펀허에 잠깐 내리더니만은
유경집을 찾아가
“내가 지금 가족을 맞으러 할빈으로 가오만
러시아 말을 전혀 모르니, 도와줄 사람이 없겠소”
유경집은 한의사라, 마침 한약 재료를 구하려고
할빈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려던 참이라.
유동하를 동행 시켜 기차는 다시 달리는디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칙칙 폭폭
뛰----
10월 22일밤 할빈에 도착하여
유경집의 사둔 되는 김성백의 집을 찾아가
하룻밤 신세를 지었더라.
중모리
다음 날(10월 23일) 아침, 안중근 일행은
하얼빈 시내에 나가 이발 하고 옷 사 입고
사진관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더라.
찰칵! 다시 한 번, 찰칵! 띵 호와.
유동하는 러시아 말은 해도 글자를 못 읽는지라,
조도선을 소개 받아 러시아 신문 기사를 해독(解讀) 한즉
“이등은 25일 밤 장춘(長春)시 교외에 있는
관성자(쿠안청쯔)를 출발하야 26일 할빈에 도착인디,
이거 영 도착 시각이 확실치를 않소.”
“그렇다면 관성자에서 거사를 앞당깁시다.” “그럽시다.”
이리 작정하니 안중근 강개하야
그날 밤 여관 방에서 시 한 수를 지었더라.
엇중모리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품은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만드는도다.
천하를 내려다 봄이여, 어느 날 대업을 이룰꼬.
동풍이 점점 차옴이여,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분개하여 한 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도적 이등이여, 네 목숨이 내 손에 달렸도다.
어찌 이리 될 줄 알았으랴, 사세가 본래 그렇도다.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만세여, 대한 독립이로다.
만세 만만세여, 대한 동포로다.
잦은모리
10월 24일 아침 할빈역으로 나간 일행이
관성자까지 표를 사려 하니 여비가 부족하거날
매표원이 하는 말이
“여기서 가까운 채가구 역에서 열차가 교차한다스키.”
뜻밖의 정보를 얻었구나.
계획을 수정하야 유동하는 할빈에 남기고,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이 채가구에 급히 가서
역장에게 물어보는데
“한국서 오는 가족이 있어 예까지 마중을 왔는데
기차 도착 시각을 알려 줄 수 있겠소스까?”
채가구 역장은 러시아 헌병 중좌인데
묻지도 않은 말까지 친절하게 답을 준다.
“오늘밤 특별 열차가 할빈에서 장춘으로 가서
일본의 대신 이토를 맞아 모레 아침 여섯 시경
이 곳을 다시 지나간다스키.”
안중근 생각에
“아침 여섯 시면 날이 밝지 않았을 시점,
그렇다면 이등은 정거장에 내리지 않을터
어찌 거사를 할 수 있겠는가?”
답답한 마음으로 그 날 밤을 지새다가
다음날(10.25) 아침 우덕순과 계획을 바꿔 상의한다.
“이등이 내일 날이 밝기 전에 이곳을 지나 가버리면
대사를 그르치는 것,
나는 오늘 할빈에 돌아가 거기서 이등을 기다릴테니
동지는 여기 계속 머물러 상황을 봐서 행동하시오.
만일 동지가 성공을 못하면
내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내가 성공을 못 할 것 같으면
동지가 먼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터.”
둘이 합의한 연후에 안중근 혼자 다시 기차로
칙칙 폭폭 칙칙 폭폭, 뛰---- 할빈으로 돌아와,
역사 주변을 다시 살핀 후에 김성백 집으로 몰래 가서
잠시 눈을 붙였더라.
안중근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보니
몰려든 왜인들에 구경 나온 중국인들까지 인산인해라.
안중근 침착하게 상황을 주시할제, 차렷! 받들어 총!
커다란 정렬 구호와 쇳소리 나는 군악대의
연주가 시작된다. 빰빠라 빰빠 빰빠 빠암
이등박문이 열차에서 내리는 장면이라.
그 순간 안중근 분노가 북받치며
“만났구나 만났구나 원수 놈을 만났구나
너를 한 번 만나고자 수 삼 년을 별렀도다
침략의 원흉 이등 너를 민족의 이름으로 응징한다.”
엇모리
안중근 거동 봐라, 안중근 거동 봐.
군중 속을 풀어 헤치고 성큼 걸어 나가더니
러시아 군대 도열한 뒤로 바싹 다가 살펴보니
군악대 저편 한 무리 러시아 고관들이
일본의 대작들을 호위하여 걸어오는디
그중에 맨 앞 쪽에 누런 얼굴에다
흰 수염을 달고 있는 조그마한 늙은이가
모자를 벗어 흔들며 의기양양 거들먹대니
“옳다 저 놈이 이등일다.
대한국 강탈의 원흉, 동양 평화의 교란자
철천지 원수 이등 놈을 내 손으로 처단한다.”
품 속에서 부라우닝 권총을 뽑아들고
우루루루루 달려나가 이등의 우측 가슴을 향해
정면으로 발사한다. 탕 탕 탕
거들먹대던 이등이 놀란 눈으로
주춤하며 비틀거리다 짐승처럼 거꾸러질제
안중근 언뜻 생각에
“만일 저 놈이 이등이 아니면 큰 낭패가 될 것이라.”
또다른 왜인을 향해 탕 탕 탕
연달아 세 발을 쏜 연후에 잠깐 멈칫 하는 사이
러시아 헌병이 달려들어 안중근을 덮치니
안중근 땅바닥에 나뒹굴어지고
들었던 총도 저만치 나가 떨어지는구나
안중근 거동 봐라, 벌떡 일어서며 하늘에 대고 외친다
“꼬레아 우라,
꼬레아 우라,
꼬레아 우라.”
아니리 – 안중근 순식간에 세 발의 총알로 이토를 포살하고 또 나머지 세 발로 일본놈만 골라 한 발씩 맞쳤으니 과연 절륜의 명사수라.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할빈역 분파소로 끌고가 곧바로 신분을 확인하더니, 러시아 당국이 긴급지시를 내린바, 채가구에 남았던 우덕순과 조도선도 바로 체포당했것다. 이날 밤 늦게 러시아 헌병대장이 안중근을 마차에 싣고 어디로 데리고 간즉, 할빈 일본제국 총영사관이라. 며칠 뒤 관동도독부 지방 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講淵孝雄)라는 자가 나타나 본격적인 신문(訊問)을 시작하는디,
검찰관 ; 피고는 한국이노 신민인가?
안중근 ; 그렇다.
재판장 ; 성명 나이 직업 신분 주소 본적지 그리고 출생지를 말하라.
안중근 ; 이름은 안응칠, 나이는 서른한살, 직업은 포수로 신분은 대한의군 총참모장이며, 주소는 평안도 평양 성외이고, 본적지와 출생지는 주소와 같다.
검찰관 ; 피고는 무슨 이유로 이토 히로부미 공작을 폭행 가해하였는가?
안중근 ; 내가 이등박문을 처단한 이유는 가공할 그의 죄악 때문인즉, 그 죄상을 낱낱이 알려줄터이니 어디 한 번 들어 보아라.
잦은모리
이등의 죄악상은 첫째는
조선국의 민황후를 시해한 죄요, 둘째는
대한국의 황제를 폐위시킨 죄라. 셋째는
을사년의 5조약과 정미년의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무고한 한국인들을 마구 학살하고,
남의 나라 정권을 무력으로 강탈한 죄.
철도와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고,
일본의 제일은행권을 강제로 유통시킨 죄.
대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아 아 아 그만 그만
한국인의 교육을 방해하고,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 태워 버린 죄.
한국이 일본의 보호를 받기를 원한다고 세계에 거짓말한 죄.
무자비한 살육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도
태평무사 한 것처럼 감쪽같이 속인 죄.
아 아 아 아 아 그만 이노 하래 도
열 네 번 째,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 열 다섯 번 째
일본 천황의 아버지인 태황제를 시해한 죄.
그마아아아아아아아안 그만 그만 그마아아아안
좃 도 마 떼.
아니리 – 안중근의 싸움은 의병투쟁과 이토 척살뿐 아니라 검사 취조 과정과 공판 과정에서 더 치열하게 전개된 바, 이름하여 안중근 전쟁이라. 안중근의 최종 목적은 법정에서 일제의 침략을 폭로하고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만천하에 천명하려는 데 있었거든.
여기서 생긴 쟁점이 재판권 관할문제라. 할빈은 청국 영토인데 러시아 동청철도 부속지이고, 피살자는 일본인인데 안중근은 한국인으로 치외법권을 갖거든. 허나 국제관계는 힘의 논리라. 일본 관할 여순감옥에 수감된 안중근 외 3인, 해가 바뀌어 1910년 2월, 여순 소재 관동도독부 지방법원 형사부로 송치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것다. 안중근 재판은 각국 기자들을 비롯해 방청객들로 가득찬 세기의 재판이었지. 법정에서 재판장 마나베(眞鍋)와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바, 속전속결로 모든 심리가 끝나고, 이어 검찰관의 논고, 관선변호사의 변론, 안중근의 최후진술, 그리고 재판장의 판결이 진행되는디,
세마치
검찰관이 논고한다.
피고는 형제 처자와 오랜 친구들에 대하야
보통 수단으론 면목이노 없는 처지라,
그 위신을 세우기 위해 공연히노
무모한 폭행을 기도함에 이른바,
피고 안중근은 사이비노 정치범에 불과한즉
사형에 처함이 마땅하다데스.
세마치
관선 변호사가 변론한다.
피고의 범행이노 동기가 오해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그 또한 자기나라노 충성에서부터 비롯된 바
본건에 적용될 실체적 형벌법은 한국법이 명백하나
한국이노 형법에는 형벌이노 법규가 아직 없으므로
법에노 불비로 무죄가 불가피하다데스.
세마치
안중근이 최후 진술을 한다.
오해에서 나왔다니 당치않은 말이오.
나는 3년 전부터 나라를 위해 생각하던 일을
결단코 실행한 것.
대한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는
내 삶의 목적이요 평생의 사명이라.
나는 대한국의 의병 참모중장으로
독립전쟁을 계획하여 이등을 주살한 것.
고로 지금 이 여순법원 공판정에서
나를 심리 판결함은 전적으로 잘못된 일.
나 안중근은 전쟁 포로인즉
마땅히 만국 공법에 의해 판결해야 할 터,
나 안중근을 포로로 대우하라.
세마치
재판장이 판결한다.
피고가 이토공을 살해한 행위는
그 결의가 개인적 원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치밀한 계획 끝에 감행이노된 흉행이므로
살인죄에 대한 극형을 과함이 지당하다.
피고 안중근을 사형에 처한다. 땅! 땅! 땅!
아니리 – 이 날이 1909년 2월 14일. 안중근은 사형, 우덕순은 징역 3년, 그리고 조도선과 유동하는 각각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지. 사형 선고를 받은 안중근, 재판장을 향해 태연히 묻는 말이 “사형보다 더 극심한 형벌은 없느냐?” 자신의 목적이 구차한 연명에 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항소를 포기하고 집필에 전념한 안중근, 그가 혹한의 감옥안에서 쓰기 시작한 자서전은 사형 선고 한달 뒤인 3월 15일, ‘안응칠 역사’라는 이름으로 탈고를 했으나, 그가 꼭 남기고 싶었던 ‘동양평화론’은 사형집행일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끝내 미완성으로 남겨졌것다. 죽음을 앞두고 안중근이 빌렘신부에게 종부성사를 요청한 바, 뮈텔 주교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빌렘신부가 주교의 명을 거역하고 여순 감옥까지 와서 중근의 마지막 가는 길 고해성사를 치러주었지. 사형 집행을 앞두고 정근 공근 두 아우가 면회를 왔거날, 이날사 고향에서 어머니가 직접 지어준 수의와 함께 눈물로 쓴 편지가 왔는디,
진양조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이 어미보다 먼저 감을
불효라고 생각지 말거라.
옳은 일로 이에 이른즉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거라.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아닌 대한인 전체의 공분이니
대의에 목숨을 내놓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니라.
응칠아 내 아들아.
여기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떠나거라.
현세에서 너와 못 만나더라도
하늘 나라에서 분명 다시 만날 것을 어미는 믿는다
아들아 내 아들아
부디 부디 잘 가거라.
중중모리
안중근이 편지를 다 읽고 회한이 북받쳐 올라
정근 공근 두 아우에게 당부를 남기는디
“나는 대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3년 간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머나먼 타국 땅에서 하릴없이 죽는다마는
너희 들은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할빈공원 인근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고.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니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모두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업을 이루도록 반드시 일러다오. ^
대한 독립의 우렁찬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덩실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만세!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의사 안중근의 마지막 유언이었더라.
아니리 – 3월 26일 오전 10시, 간수가 와서 안중근을 사형장으로 끌고 간즉, 형장 검시실에 검찰관과 전옥, 통역 등이 착석하여 집행을 진행하는디, 백지와 백포로 눈을 가린 안중근, 잠시 묵도를 행하였것다. 이윽고 계단을 딛고 교수대에 올라가는디, 이 날 안중근의 복장은 지난 밤 고향에서 가져온, 어머님이 손수 지어준 조선옷이었것다. 가슴에 십자가를 달고 교수대에 선 그의 태도는 숙연했고, 안색과 말투에 이르기까지 평상시와 다름없이 조용하고도 침착하게 죽음으로 나아갔더라.
엇중모리
안중근 죽는 날까지 노심초사한 일이
민족의 독립이요 동양의 평화로다
그가 남긴 미완의 저서는 오늘 우리 현실의 예언이라.
여순 지역 중립화는 한반도 중립화 담론이며,
한 중 일 3국 평화회의는 한반도 6자 회담이라.
3국 공동 군대론은 동북아 집단 안보 체제요,
공동은행 공동화폐 추진은 동북아 경제 공동체인즉
유럽 연합 EU보다 80년이나 앞섰더라
무엇보다 놀라운 발상은 유엔 같은 국제 기구를
그 때 벌써 예견한 것.
어화 세상 사람들아, 안중근 의사를 어찌 아뇨
더이상 병원 의사로 알지 말고, 목숨 걸만한 일을 찾아보세
안중근 의사여,
우리는 아직 의사님의 유해조차 찾지를 못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소만
우리 모두의 가슴 속이 의사님 모신 무덤이라.
안중근 의사여, 안중근 의사여!
민족의 화해 일치와 통일을 향한 겨레의 길
부디 저 세상에서 돌보아 주소서
지켜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