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도 먼 옛날 상달 초사흩날 백두산 아래 나라 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이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 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 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이 제 비록 도둑이라고는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사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 살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평중모리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 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 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쪽.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서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아니리 - 예가 바로 재벌[狾䋢], 국회의원(국獪狋猿), 고급공무원(跍礏功無獂), 장성(長猩), 장차관(瞕犭差 矔)이라 이름하는
간땡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 질기기 동탁 배꼽같은 천하흉폭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아니리 -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 불알만한 도둑보가 곁붙어서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적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 놈이 모여 “십년 전 이맘 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 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이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 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이렇게 뜻을 모아, 훔칠 도(盜)짜 한 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세마치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듯, 구름은 둥실
저마다 골프채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닫더니
비전(秘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헌다.
중중모리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狾䋢]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 해 입고 돈으로 모자 해 쓰고
돈으로 구두 해 신고 돈으로 장갑 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찌, 금단추, 금넥타이핀, 금 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이,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뿅뿅 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 치고 간장 치고 겨자 치고 고추장 치고 미원까지 톡톡!
실고추 파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 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갖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 삼아서
칼 쥔 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띔에 정보 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 샀다가 길 뚫리면 한몫 잡고
千원 工事는 오원에 쓱싹!
아니리 -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 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 숙수 뺨치것다.
잦은모리
둘째 놈이 나온다. 국회의원이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웅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몸둥이에 혁명공약 휘휘 감고
혁명공약 모자 쓰고 혁명공약 배지 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 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르르르.
혁명이다!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다!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다!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이다! 빈농(貧農)은 이농(離農)으로!
건설이다!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다!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을 철두철미 본받아라!
궐기하라, 철기하라!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올빼미야, 족제비야, 사꾸라, 유령들아,
표 도둑질 성전에로 총 궐기하라!
아니리 - 손자(孫子)에도 병불염사(兵不厭邪)라. 치자 즉 도자(治者 卽 盜者)요, 공약 즉 공약(公約 卽 空約)이니
우매(愚昧)국민 그리 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라! 냄새난다, 퉤! 골프 좀 쳐야겠다.
잦은모리
또 한 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跍礏功無獂)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꽉 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것을 갖다 주니 절레절레 고개 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어허 저놈 뒤 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 쪽 보고 히뜩히뜩 저 쪽 보고 헤끗헤끗,
피둥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 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산같이 높은 책상, 바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 나직,
공(功)은 쥐뿔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 위에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 먹고, 뇌물은 청해 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횐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 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 탈 없다더냐.
엇모리
넷째 놈이 나온다. 장성(長猩) 놈이 나온다.
키 크기 팔대장성, 제 밑에 졸개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에 털이 숭숭, 고리눈 범 아가리, 벌렁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 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 차고 저기 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저놈 재조 봐라, 장성 놈 재조 봐라.
졸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 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졸병 먹일 소돼지는 털 한 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 먹고
막사 지을 재목 갖다 제 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 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넣어 열중 쉬엇 열중열중 열중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 마누라 화냥끼에 노리개로 묶어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어수공방전(雲雨魚水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
엇중모리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 끼어 추접무비(無比) 눈꼽 낀 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 주물럭 계집 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다. 안 팔려도 증산이다.
째진 북소리에 깨진 나발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 씹으며
켄트를 피워 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휘이익!
아니리 - 내갈겨 쓰고 나서, 허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이때여 추문 듣고 뒤쫓아온 말 잘하는 반벙어리 신문기자 앞에 놓고
“일국의 재상더러 부정이 웬 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 오적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혔다가는 뼉다구도 못 추리것다.” 혼줄 빠지게 내빼버렸으니 요즘엔 제사 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것다.
아니리 - 이리 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 물씬물씬 무르익어 갈 적에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하늘에 날벼락 치듯 쾅 쾅 쾅! 연거푸 떨어져 내리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엇모리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 찌께미 잔뜩,
메기 주둥이에 침은 질질질.
사람 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 혹이 뛸 때마다 털렁 털렁.
열십자 팔 벌리고 멧돝처럼 달려들어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 훑고, 저놈 굴비 엮어
종삼 명동 무교동 양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왕창 쓸어다가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 뜯고 물어뜯고
업어 메치고 뒤집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 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려 직신작신!
노들강변 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트려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쇠파이프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에 호르라기
개다리 소다리 장총에다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열탄 구토탄 뜸물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쬐그려앉은 되민증들이 발발,
전라도 개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 발발발 떨어댄다.
“이놈, 니가 오적이지?”
“아니요!”
“그럼 니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오적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쭉쟁이 다 합쳐서 풍속사범 오적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펨프 아니요!”
“그럼 니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쪼코렛팔이,
도롭프스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이 그 아니냐?”
“아이고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니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욱 좋다. 거지에 문둥이에 시라이, 양아치에
비렁뱅이 다 합쳐서 우범 오적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 괘씸한 놈 큰집으로 바삐 가자!”
중머리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개땅쇠로 농사로는 밥 못 먹어 돈 벌라고 서울 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제 밤 배가 고파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휘모리
이리 바짝 저리 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 당근질에 비행기 태워 공중잡이,
고추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 건
“아니랑께롱!”
아니리 - 이 한 마디뿐이것다.
아니리 - 포도대장 할 수 없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 봐라. “오적은 무엇이며 어디 있나? 말만 하면 네 목숨은 살려 주마!”
꾀수 놈이 이 말 듣고 옳다꾸나 대답을 허는디, “오적이라 하는 것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다섯 짐생으로,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소.”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것들이 짐생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생도 아조 흉악한 짐생이지라우.” “옳다 됐다, 내 새끼야! 아, 그 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이 하도 좋아갖고 지 무릎을 팍 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버렸던지 무릎팍이 파싹 깨져버렸것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놈 꾀수 앞장 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것다.”
잦은모리
꾀수란 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을 질풍같이 내닫는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비켜라 비켜서라.
안 비키면 오적이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다당 쿵쾅
남산을 홀랑 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포도대장 급한 마음 시합장에 뛰어들어 대갈일성!
아니리 - “이놈들, 오적은 듣거라! 너희 한갖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 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렷다!”
아니리 -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둘러보니, 눈 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모다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진양 세마치
서슬 퍼런 용트림이 기둥 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 가득.
몇 십 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 원짜리 정원수 백만 원짜리 외국 개,
천만 원짜리 수석비석, 천만 원짜리 석등석불.
일억 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 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에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 식모 두고 경제학박사 회계 두고,
임학박사 원정(園丁) 두고 경영학박사 집사 두고,
가정교사는 철학박사, 비서는 정치학박사,
미용사 미학박사, 박사박사박사박사.
중머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 넣고,
붕어 행여 더울세라 연못 속에 에어컨 넣고.
새들 행여 추울세라 새장 속에 히터 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장 속에 냉장고 넣고.
대리석 양옥 위에 조선기와 살짝 얹어,
기둥은 코린트식, 대들보는 이오니아.
선자추녀 쇠로 치고 굽도리 삿슈 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 벽에 갈포 발라,
앞뒷퇴 널~찍 터서 복판에다가 메인홀.
기와 위에 이층 올려, 이층 위에 옥상 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 본 따 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중중모리
열어 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얼핏 보니,
용 그린 봉장, 봉 그린 용장, 삼천 삼백 삼십 삼층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빌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이조청자, 고려백자, 쇠유리병, 흙 나무그릇.
꺼꾸로 걸린 피카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 액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 점 걸어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山水花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점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 토기, 당화기, 왜화기, 호피 담요 씨운 텔레비전,
화류문갑 속의 쏘니 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 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RCA) 영사기, 호박필통에 파카 만년필.
여편네들 치장 보니
청옥 머리핀, 백옥 구두장식, 황금 부로취, 백금 이빨,
밀화 귓구멍마개, 호박 밑구멍마개, 산호 똥구멍마개, 루비 배꼽마개.
진주 귀걸이. 야광주 코걸이, 자수정 목걸이,
싸파이어 팔찌, 에메랄드 발찌, 다이야몬드 허리띠
도섭 -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백원짜리 납반지가 반짝 번쩍! 칠흑암야에 횃불처럼 도도무쌍이라!
잦은모리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콧살볶음, 염소수염튀김, 노루뿔삶음, 닭네발산적,
꿩지느라미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발톱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잘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안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워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식혜, 파인애플화채, 무화과 꽃잎 설탕버무림,
롱가리트유과, 메사돈약과, 사카린잡과, 개구리알 수란탕,
괭장망장 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펜, 송엽주,
드라이진,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진빔, 선약주,
나폴레옹꼬냑에다가 보드카, 람酒라!
아니리 -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못하고, 포도대장이 침을 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 모다 도적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저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진작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이란 두 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아니리 - 이리 한참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 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하는디, 보도 듣도 맛보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 잔 두 잔 헐레벌떡 석 잔 넉 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연설을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처먹었던지 이빨이 확 닳아 없어져버린 아가리로 잇몸을 딱딱 부딪쳐가면서 씹어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조리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 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시니, 부디 그 길로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나이다.” 이 말 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제,
휘모리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아채어 오라 묶어 세운 뒤에
“이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창조(唱調)
때는 노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가 추연하네.
늦은 중머리
외기러기 짝을 찾고 쪼각달 희게 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 흐를 제
어쩔거나 어쩔거나 콩알같은 꾀수 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거나 어쩔거나, 우리 꾀수 어쩔거나.
전라도서 굶고 살다 서울 와서 돈 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 왼갖 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어쩔꺼나, 원통하고 분한 사정 뉘가 있어 바로잡나.
잘 가거라 꾀수야! 잘 가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 가거라.
아니리 - 꾀수는 그 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여겨 저희 집 솟을대문 바로 그 곁에 있는 개집 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 하매, 포도대장 이 말 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 좋네 온갖 병기(兵器) 다 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 속에서 내내 잘 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우루루루루 쾅! 벼락에 맞아 급살을 하니, 이때 또한 오적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러한 이야기가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야 김 아무개같은 거지시인의 시귀(詩句)에까지 올라 전해오던 것이 또 임 아무개라 하는 또랑광대 소리판 목록에 들어 길이길이 전해오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