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조
불쌍하신 어머니 불도 안들인 냉방에서
어머니 오기만 기다리는 자식들 어떻게든 멕여 살리자고
차가운 진눈개비 맞아가며 왼종일 헤매시는 어머니
메마른 세상에서 온갖 시련 혼자 감당하는 가여운 이 여자를
하늘 아래 어느 누가 존경 안할 수 있으리요
하루는 어머니 자식들을 앉혀놓고 붙잡고 펑펑 우시면서
뜻밖의 말씀을 하시난디 "너희만은 내 마음을 알아줄터
아버지는 자포자기 방황하고 일가친척들을 날 욕하니
내가 함께 이렇게 있는것이 너희들 배를 곯게하는구나
나하나가 없어져야 이 집안이 화평할터
나는 이 길로 서울가서 주방일 식모살이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 어떻게든 부칠테니 태일이 너는 동생들 잘돌보고
아버지한테 매안맞게 조심해서 지내거래이 알겄나?
태일이 막힌 가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는구나
다음날 아침은 설날인데 어머니는 남편 몰래 집을 나서
서울가는 새벽 열차 홀로 몸을 실었더라
아니리 - 이렇듯 가난과 불화에 찌든 어머니가 남편 몰래 서울로 떠나버리자 태일이가 막내동생 등에 업고 어머니 찾아 무작정 상경한 것인디, 이 때가 1964년. 눈 감으면 코 베 간다는 서울에서 껌팔이 담배팔이 구두닦이 신문팔이에 리어카 뒤밀이를 하던 태일이가 동대문 서울운동 장 부근 청계천변에서 우연히 전봇대에 붙은 어느 피복공장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가본즉, 거기가 바로 평화시장이라. 이 평화시장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한번 그 역사를 돌아 보는디,
단중모리
평화시장은 한국전쟁 때 월남해 온 피난민들이 청계천변 판자촌에
재봉틀 한두 대씩 놓고 옷을 만들어 팔던 것에서 생겨난 곳이라
이농민들까지 모여들어 무허가 판자촌이 다닥 다닥 달라붙어
빈민촌이 되었는디 일천구백오십팔년(1985년) 불이야 ---
큰 불이나서 몽땅 타버리고 평화시장 재건위가 결성되어
주식회사가 설립될제 정부에서 더럽고 악취나는 청계천을 정비한다
복개공사를 시작하니 일천구백육십이년(1962년) 복개된 광장 한쪽 편에
콩크리트로 지은 삼층 건물이 세워진즉 건물 1층에는 의류 도매상들이 들어서고
이삼(2, 3)층에는 피복 공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차니 평화시장 이 아니냐
잦은모리
태일이가 그날부터 시다 생활을 시작한다
시다가 무엇이냐 왜놈 말로 시다바리
우리 말로는 보조원이요 기술 배우는 견습공이라
비좁은 다락방에 미싱사와 시다들 서른(30)명 넘는 인원들이
빽빽하게 끼어앉아 죙일 일을 하는디 드르륵 드르륵
지지직 지지직 드르르르르륵 지지지지지직
끊임없는 재봉틀 소음에 섬유 원단 약품 냄새
옷감 자른 분진들로 온통 먼지 구덩이라
하루에도 수십번을 사다리 타고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 내리락 오르락
툭하면 욕먹고 아차하면 야단맞고
어이 시다 1번시다 2번시다 어이 3번 어이 4번
5번 6번 7번 8번 이름은 없고 숫자만 있는
따라지 인생이로구나
아니리 - 이렇게 일한 시다 첫 월급이 1500원, 일당으로 50원 꼴이라(요새 돈으로 일당 5천원, 하루 일당이 한시간 시급도 안된다).
그러던 태일이가 일솜씨를 인정받아 미싱사로 자리를 옮겼는디, 그제서야 태일이 눈에 띤 것이 주인과 직공간의 불평등한 관계, 불공정한 조건이라. 요새 말로 갑을관계! “아하, 재단사가 돼서 요걸 바로잡아야겠구나.” 재단보조로 다시 들어가 스무살 되던 해 요행히 재단사 자리를 얻었지.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으니 미싱사 한 사람이 갑자기 각혈을 하며 쓰러진거여. 태일이 급히 업고 병원에 달려간즉 폐병 3기라.
진양조
세상에 서럽고 고달픈 일 많겠지만
평화시장 우리들만 할까
닭장같은 다락방에 쪼그리고
날마다 먼지를 됫빡으로 들이마시니
남아날 사람 뉘있겠나
침침한 불빛 독한 냄새 속에 타이밍 약 받아먹으며
밤새워 재봉틀과 싸우고 나면
정신은 멍멍하고 손발은 뻣뻣하고
폐 속은 상해버렸네
병이 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니 그야말로 밑지는 인생
그것은 내 부서진 젊음 그것은 내 죽어가는 생명
시들은 목숨꽃 어디에 다시피랴
붉고 붉어라 피지도 못한채 시들어버린
평화시장 피꽃이여
아니리 - 헌디, 이렇게 병든 미싱사가 보상을 받기는커녕 해고를 당해버렸으니 태일이 충격을 받았지. 재단사로서 아무리 애를 써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한 태일! 그 무렵 태일이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는 바, 아버지가, 한때 대구 방적공장을 다녔는데 해방 직후 노동자 총파업에 참여했다 찍힌 인생이 됐다는 거라. 아버지 하는 말이, “근로기준법만 지켜도 세상이 좋아질긴데...” “근로기준법?”
중중모리
태일이가 이말 듣고
근로기준법이라고요? 근로자를 위한 법이 따로 있다고요?
평화 시장 헌책 방을 뒤져 책을 사서 읽는디
제목부터 온통 한자라 읽을 수가 없구나
천자문을 찾아가며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봉사가 길을 걷듯 한자 한자 읽어 나가는디
본법 헌법 의거 근로자 기본적 생활 보장
태일이 가슴이 먹먹 다음 조를 읽어 나가는디
본법이 정하는 근로 조건은 최저기준이다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 의사로 결정 해야 한다 근로자와 사용자는
단체협약 취업 규칙과 근로 계약을 준수하고 성실하게 이행하라
사용 자는 근로 자에 대해 남녀 차별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다른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허허 세상에 이런법이 이런 법이 있었네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은
이웃집 대학나온 아저씨 찾아가서 꼬치꼬치 물어가며
밤낮으로 깨쳐나가는구나
잦은모리
사용자는 근로 계약을 체결시에 임금과 근로시간 기타 근로 조건을
명시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 했을시 근로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없이 근로자를 해고 휴직정직감봉 기타 징벌을 할 수 없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의 요양을 위한 휴업기간과 그후 삼십(30)일간은 해고하지 못한다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하루에 여덟(8)시간 일주일에 사십팔(48)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사용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주어야 하며 1주일에 1회 이상 휴일을 주어야 하며
뿐만 아니라 한달에 하루 유급 휴가를 주어야 한다
여자와 소년의 근로에 대한 특별 조항이 있는가 하면 업무상 재해와 보상에 관련한
특별 규정도 들어 있으니 이것이 바로 근로자의 권리와 생활을 보장하는
근로 기준법이라
2부. 바보회
아니리 - 태일이가 근로기준법 책을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밤낮없이 읽고 생각 을 하는디, 그러던 어느 날 태일이 밤 늦게 시다들 먼저 보내고 청소를 대신 해주
다가 주인에게 들켰지. 주인이 노발대발,“허, 재단사가 시다들 시다바리나 하고,
기율이 안 서잖아? 주인 말 안 듣는 재단사는 필요없어.” 졸지에 해고를 당했것다.
그 무렵 태일의 아버지 세상을 떠났으니, 죽음을 앞두고 아내에게 하는 말이
“당신, 남편은 잘못 만났지만 아들 하나는 잘 두었소, 그놈 하는 일 너무 말리지 마
소.” 마지막 유언이었더라. 아버지를 묻은 태일이 작심하고, 보장된 근로조건도 찾아먹지 못하는 평화시장 바보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기로 하는디,
단중모리
재단사들이 모여든다 평화시장 인근에 있는 허름한 중국집에
전현직 재단사들이 조심스레 모여든다 짜장면 한그릇씩
뚝딱 해치우고는 전태일이 나서 기조 설명을 하는디
"우리들 근로자는 한사람 한사람을 떼어놓고 보면은
먼지보다도 못하지만 하나로 뭉치면은 바위보다 더 큰 산이라
평화시장 열악하기 짝이 없는 근로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재단사들 모임을 한번 만들어봄이 어떻겠소"
"모임이오? 모임이라... 좋기는 헌디 미적미적..."
전태일이 잠시 생각하더니 노동단체로 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친목단체로 우선 시작함이 어떻겠소"
좋소, 그것이 좋겠소 찬성이요 나도 찬성 호응 할제
아까 그 미적대던 이가 조심스레 묻는구나
"그럼 우리 모임 이름은 뭐라고 할것이오?"
전태일이 제안한다 "나는 우리 모임 이름을 바보회라 하고 싶소"
"바보? 바보?? 에이 하필 농담이겠지
전태일이 정색하더니 "우리는 바보요 주면 주는대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항의 한 번 못했으니 우리는 바보요
바보임을 인정 해야해 바보같은 우리가 바보로 살지 않으려면
이제 우리 스스로가 바보가 되어야 하오
"맞소, 우리는 바보였소. 우리 모두 바보가 됩시다"
의기투합한 열 세(13)명의 재단사가 바보회를 창립하고
만장일치로 전태일을 회장으로 추대를 한다
잦은모리
바보회가 그날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쌍문동 태일이네 판자 집으로 몰려들가서
밤을 새워 토론하니 요새 말로 하자면은 멤버십 트레이닝
약칭 엠티(MT)라 바보회가 추진할 일을 착 착 계획하는디
첫째가 평화시장 근로조건 개선이요 둘째는 조직 확장
셋째는 평화시장 노동 실태조사 이렇듯 준비를 하면서
가까운 목표를 세우는디 다락방 없애기 노동시간 줄이기
작업장 전등 밝게하기 이리 세가지 사항을
평화시장 주식 회사를 상대로 직접 건의에 나서는구나
아니리 - 전태일이 노동실태 조사 설문지 300장을 인쇄해서 어렵게 30여장 회수해갖고 그걸 들고 서울시청을 찾아가니, 근로감독관이 다짜고짜 “무슨 일이야? 용건만 말해.” 허, 잡상인 내몰 듯 내쫓는 것 아닌가? 태일이 실망하여 이번에는 노동청을 찾아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알았어. 두고 가.” 이때부터 평화시장 업주들이 전태일을 호환마마 보듯 멀리하더니 또다시 부당해고를 한지라, 공사판 막노동을 전전하며 힘겹게 지내던중, 삼각산 임마누엘 수도원 공사장에서 먹고자며 막일을 하게 되었는디, 낮이면 바위를 깨고 우물을 파고, 저녁이면 꼭대기까지 리어카로 목재를 실어나르고... 한 백날 지났을까? 칠흑같은 밤, 태일이 적막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고뇌를 거듭할제,
진양조
이 결단을 앞에두고 얼마나 오랜시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나는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한다
불쌍한 내 형제들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
내 이상의 전부 평화 시장
어린 동심 곁으로 나는 꼭 돌아가야 한다
아니리 - 1970년 9월 태일이 평화시장으로 돌아오니, 바보회는 뿔뿔이 흩어지고... 노동청을 다시 찾아가 진정을 했지만 역시 또 외면당하고, 그러다가 우연히 노동청 출입기자를 만났는디, 기자가 해주는 말이 “단체 조직이 있어 집단으로 진정서를 제출해야 신문에 실어줄 수 있는거라.” “아하, 조직이 있어야겠구나!” 그리하여 9월 16일, 흩어졌던 재단사들이 다시 모여 ‘바보회’를 ’삼동친목회‘로 확장하니,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상가 삼동의 근로자들이 새롭게 깨어나는 다짐의 날이라.
잦은모리
태일이가 삼동 친목회 동지들과 근로 실태 설문 조사를 재개한다
1개월에 며칠을 쉽니까? 1개월에 며칠 쉬기를 희망합니까?
하루에 몇시간을 작업 하십니까? 하루에 몇시간 작업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십니까
당신의 건강상태는 현재 어떻습니까 보건소 건강 진단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게 일한 당신의 1개월 수당은 얼마입니까?
조사 결과가 나왔는디 하루 작업 시간을 열네(14)시간
미싱사들 작업 강도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최하노동
시다들은 대부분 미성년자로서 봉급은 하루 밥값도 안되는 최하수준
공장 실태를 볼작시면 환기장치는 물론 창문이 전혀없고
허리를 펼 수 없는 2층 다락방 구조라 근로자들 대부분이 신경성 소화불량에
만성위장병에다가 끝내 폐병까지 건강상태가 최악이라
이렇듯 조사를 마친 후에 진정서를 만들어서 노동청장 앞으로 정줄하게 보내면서
같은 내용을 신문사 방송국으로도 함께 보냈더라
단중모리
평화시장 피복제품상에 종업원 2만여명은 과도한 격무와
작업환경의 유해불량으로 인하여 각종 직업성 질환에 허덕이고 있으며
건강진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바 우리 근로자들은 이와 같은 악조건하에서는
더 이상 작업을 계속할 수가 없고 더 이상 건강을 유지할 수가 없어
당국의 강력한 시정 조치를 요구하오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 개선 진정서라
아니리 - 이렇듯 진정서를 제출한 바, 천우신조로 그날 <경향신문> 사회면 톱기사로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 평화시장의 참상에 관한 보도가 실렸것다. 감격한 삼동 동지들이 차고 있던 탱크시계 전당포에 맡기고 그 돈으로 신문 왕창 사서, “신문이요 신문, 기사 특보요 기사 특보!” 신문 300부가 삽시간에 팔렸것다.
중중모리
그 날 저녁 평화시장은 잔치 분위기라 시장 골목 요소 요소 마다
재단사 미싱사 시다 할 것 없이 근로자들이 모여서서
신문들을 둘러보며 웅성 웅성 웅성 우리도 이제 사람이라
우리도 인간이라 모두들 허리를 쭈욱 펴보며 모처럼 활기를 띠는구나
3부. 분신 (焚身)
아니리 - 평화시장의 참상이 신문에 보도된 다음날, 사장이 찾는다고 해서 평화시장 2층 사장실에 올라가보니 인근 상가 업주들이 다 모여서 기세 등등하게 앉아있는디, 알고보니 회사 노동청 경찰이 다 한패라. 삼동친목회 회원들이 분개해서 데모를 하기로, 대학생들처럼 데모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11월 13일 오후 1시로 날을 잡았것다. 그래놓고는 전태일이 내놓는 말이,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근로기준법’을 불살라 버립시다.” 뜻밖의 제안을 해놓니, 운명의 11월 13일이 다가오면서 태일의 마음이 요동을 치거날, 태일이 흐트러지는 자신을 다잡는디,
중모리
생을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형제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위해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영원한 고향이로다
오늘은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위해 이리 발버둥 치오니
하느님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니리 - 그즈음 어머니는 눈이 자꾸 침침해지면서 앞을 잘 보지 못하게 되었는디, 요즘와서 태일의 거동이 왠지 수상한지라 불안한 마음이 들거날, 꿈도 뒤숭숭하고... 방 한켠에 근로기준법인지 하는 책이 눈에 띄자, 이 책 때문에 뭔 일이 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부엌에 있는 빈 솥에다 책을 몰래 숨겼것다. 그리하여 11월 12일, 거사를 하루 앞둔 날, 아침이 되었는디,
진양조
내 아들 태일이가 영원히 떠나는 날
그 아침이 그날이었네 태일이 새벽부터 일어나더니
정성스레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무엇인가를 찾는구나 온 방안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어머니 여기 근로기준법 책 못봤소?" 어머니 "올 것이 왔구나"
시치미 뚝 떼고 내색을 않거날 태일이 불같이 화를내어
"어머니 내일 그 책이 꼭 있어야 돼요" 어머니 하는 수 없이
솥에든 책을 꺼내 주었네 태일이가 그 책을 받아들더니
아침밥도 드는둥 마는둥 일어나서는
안입던 바바리코트 걸쳐입고 근로기준법 책을 성경처럼 옆에끼고
다시는 못 올 길을 영원히 떠나갔네
아니리 - 그 날 집을 나간 태일은 삼동 회원들과 함께 데모에 사용할 구호를 정하고 현수막을 만들었지. 준비 다 마쳐놓고 그날 밤은 삼동 친구 단칸방에서 보냈것다. 다음날 1970년 11월 13일.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었는데, 태일이 화형식에 쓸 석유 한통과 라이터를 구입해서 평화시장에 가보니 경찰들이 벌써 깔려있거날, 언론사 기자들은 별 기대 안하고 근처 찻집에 앉아 사태를 관망할제, 오후 1시가 되자 수백명 되는 근로자들이 뭔 구경거리라도 있을 줄 알고 꾸역꾸역 모여들었것다.
엇모리
태일이 거동봐라 태일이 거동봐 삼동친목회 회원들과
플래카드 앞세우고 국민은행 광장으로 당당히 걸어나간다
구호를 함께 외치는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광장앞에 엉켜있던 수많은 인파가 이쪽을 주시할제
대기하던 경찰들이 곤봉을 치켜들고 우루루루루 달려든다
인정사정없이 마구패고 치고밟고 플래카드를 잡아채니
종이로 된 플래카드가 갈갈이 찢어진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왕자왕 쏠릴적에
태일이 결심한듯 태일이 결심한듯 건물로 들어가더니
준비했던 석유통을 번뜻 치켜들어 온몸에다 붓더니마는
문밖으로 달려나온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들이 의아하여 놀랜눈으로 쳐다볼제
태일이 거동봐라 태일이 거동봐 근로기준법 책을 한 손으로 치켜들고
또 한 손으로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탁! 화아악 불이 확 붙었구나
불길이 치솟으며 온몸이 갑자기 불덩이에 휩싸이니
사람들 깜짝놀라 어쩔 줄을 몰라할제
전태일 소리친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처절한 외침이 비명처럼 들리거날
태일이 무슨말을 한번 더 외치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온몸이 숯덩이가 되어 그만 쓰러지고 마는구나
창조 - 이때여 어머니는 그 날 밤 늦게서야 친구의 연락받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온즉, 온몸을 붕대로 감아놓아 시신이나 다름없네.
어머니 아들의 두 손을 꼭 쥐고 울음을 삼킬적에,
태일 - 어머니 담대하세요. 나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 어머니,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세요. 어머니, 내 말 들어준다고 대답해 주세요.
이소선 - 그래,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기어코 네 일을 이루겠다.
태일 - (삼동 회원들에게) 여보게들, 우리가 하려던 일, 내가 죽고 나서라도 꼭 이 루어주게, 아무리 어렵더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되네. (벌떡 일어날 듯 몸을 움직이며) 왜 대답하지 않는가?
삼동들 - (슬픔을 누르며) 하겠네. 꼭 이루겠네.
태일 - (마지막 절규)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중머리
어너 어너 어너허넘차 어이가리넘차 너화넘
어너 어너 어너허넘차 어이가리넘차 너화넘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나를 영원히 간직하여주게
어너 어너 어너허넘차 어이가리넘차 너화넘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앉기를 바라는 이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에 못다굴린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데 굴리는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어너 어너 어너어 넘차 어이가리넘차 너화넘
중중모리
어너 어너 어이가리넘차 너화넘
어너 어너 어이가리넘차 너화넘
내 죽음을 헛되이말라
어너 어너 어이가리넘차 너화넘
내 죽음을 헛되이말라
어너 어너 어이가리넘차 너화넘
내 죽음을 헛되이말라
어너 어너 어이가리넘차 너화넘
어너 어너 어이가리넘차 너화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