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조업 단축에 휴업 폐업 급증한다.
그해 4월 사북에서
광산노동자 수천명이 읍내를 점령하니
무력한 과도정부는 속수무책이로구나.
그때여 대학생들 학원자율 추진하고, 이어
사회민주화 투쟁으로 나아갈제
“비상계엄 해제하라” “유신잔당 물러가라”
“정치일정을 단축하라” “민중생존권 보장하라”
서울역 앞 집결하니 운집인파가 15만이라
학생지도부 하는 말이
“이만 하면 우리 뜻은 충분히 전달됐다.
당분간 시국 추이를 관망키로 하자.”
자진 해산 하였구나.
아니리 - 이때여 호남의 광주에서도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한껏 고조되고 있었으니 광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동학농민혁명으로 해서 의병투쟁으로, 또 일제때 학생운동으로 해서 민족 ․ 민중운동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온 곳이라. 5월 들어 도청앞 분수대에서 연일 민주화 성회가 개최될제
잦은모리
학생들이 모여든다
전남대생 조선대생 광주교대 조대공전
동원전문 서강전문 성인경상
기독간호전문대생까지 합세하니 그 숫자 3만여라.
노래 불러 구호도 외쳐 시국선언문 발표
시민에게 드리는 글 교수님께 올리는 글
국군 장병에게 보내는 글까지
차례차례 낭독할제 날이 어둑 저물었다.
수백개 횃불에다 불을 활- 활- 부쳐
일개조는 금남로로 해서 유동 삼거리로
복개상가 지나 중앙여상으로
현대극장 거쳐 다시 금남로로 행진하고,
또 한 개조는 체신청으로 산장입구 지나
산수동 오거리 나아갔다 동명파출소 노동청을 돌아
다시 분수대로 집결하니
횃불 대행진 장엄하구나.
아니리 - 그때여 전두환을 비롯한 군부 내 강경 소장파는 이미 정권 찬탈의 야욕을 굳히고 병력배치와 진압훈련을 착착 진행하던 중,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돌연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선포하는데, 서슬퍼런 ‘설렁제’렷다.
중중모리
계엄 포고를 발한다 계엄 포고를 발한다
일체의 정치활동 중지한다.
정치 목적의 집회는 옥내외 막론코 금지.
언론 출판 보도 방송은 사전에 검열을 득할 것
각급 대학은 이 시각부터 무기한 휴교 조치하고
유언비어 유포 및 날조는 엄중하게 금지.
계엄 포고령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도 체포하여 가차없이 처단한다.
이렇듯 으르는 소리
테레비 라디오 생방송으로 떵그렇게 들린다.
아니리 - 계엄 당국은 김대중 선생을 비롯한 재야 정치인들과 민주인사들을 불시에 급습 체포하여놓고, 이화여대에 모여있던 각 대학 총학생회 임원들을 모조리 연행한 후 전국 각 대학교마다 계엄군을 증강 배치시키난디,
평중모리
얼룩무늬 공수부대 전남대학 진주하여
교문을 봉쇄하고 출입을 통제할 제 학생들 모여들어
“계엄군 물러가라” “휴교령 철회하라”
공수부대 중대장 갑자기 뛰쳐나와 “돌격 앞으로!”
공수대들 우루루루루루......
쇠심 박힌 곤봉으로 마구 후려 갈기니
학생들 놀라 도망치며 “시내로 나가자”
잦은모리
광주신역 광장에서 전열을 정비하여
금남로로 나아간다.
대기하던 전투경찰 펑! 펑!
최루탄 쏘아대니 시위대 흩어지며
“시민 여러분 동참합시다.”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소.”
경찰과 숨바꼭질 계속할제
그때여 군용트럭 십여대가 맹속력으로 당도
계엄군들 내리는데 공수단이 분명쿠나.
한 손에는 대검 들고 또한 손에는 곤봉 들고
살기 등등! 표적을 정해서 끝까지 추적
닥치는대로 패고 찌르는데,
피투성이로 늘어진 사람
다리와 머리를 맞들어서 몇 번 추스르더니
트럭 위로 내던진다.
숨어보던 주민들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고 저놈들이 사람 다 죽이네.”
중중모리
허허 이게 웬 일이여
이것이 웬 일이여
학생들이 무슨 죄라
광주 사람 무슨 죄라
이리도 무자비허여!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마는
망연 개탄을 하는구나.
아니리 - 이날 밤 공수부대의 만행에 대한 소문이 전화줄을 타고 또 이웃집 담을 넘어 광주 전역에 불길처럼 번져가니, 모두들 공포와 분노를 억누르며 꼬박 밤을 새웠것다. 아침이 되자 궁금해진 시민들이 꾸역꾸역 거리로 몰려나오니, 삽시간에 금남로가 군중으로 가득 찬지라, 전투경찰이 최루탄과 페퍼포그를 마구 쏘아대며 해산을 종용했으나, 군중들도 이제 물러서지 않고 맞서 투석전을 벌일 적에
엇모리
공수특전대원들 장갑차를 앞세우고
짓치며 들어온다.
철망 달린 철모 써, 엠 식스틴(M16) 둘러메
벌겋게 충혈된채 달려와
곤봉으로 내려쳐, 개머리판은 돌려쳐
착검한 소총으로 가차없이 찔러댄다.
분노한 군중들 화염병으로 격렬하게 맞설제
공수대 거동 봐라
캘리버 기관포를 장갑차에 꽂고
시위 군중 한가운데로 미친듯이 달려든다.
뒤처진 시민들 여지없이 당할 적에
공용터미널 지하도에선 출입구가 봉쇄되어 수십명이 당했구나.
부상자를 이송하던 택시기사까지도
대검으로 배를 찔려 무참하게 살해되니
광주시내 전역이 아비규환이로구나.
중머리
가스 냄새 자욱하고 가로등은 깨어지고
길가에는 돌맹이들 유리조각 흩어져 널렸난디
어둠 속에 사람들은 헤어질줄 모르는채
두 주먹 불끈 쥐고
“광주를 구해야 혀, 광주를 살려야 혀.”
속으로만 울음 운다.
아니리 - 이렇듯 잔인한 만행을 저지른 공수특전단 작전명이 ‘화려한 휴가’였것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전일의 살육광경을 서로 전하는데, 특히 택시기사들은 분개하여 따로 대책을 세우기로 연락들을 취할 적에, 시장 상인들은 “이 판에 무슨 장사냐” 하면서 거리로 나오고, 가게 점원 요식업소 종업원들도 “지금 이러고 있을 때냐” 하면서 밖으로 나오고, 회사원들도 일이 손에 안 잡히니 공연히 거리로 나오고, 가정주부 할머니들도 “야, 시방 일이 어떻게 돌아간다냐?” 하면서 밖으로 나오고, 술집 아가씨들도 “우리라고 빠질 수 있냐? 시간도 많은디...” 덩달아 거리로 나오니, 광주시내 전시민 전계층이 거리로 몰려 나왔것다. 오후가 되자 금남로에 군중이 수만명으로 불어난지라 자연 연좌농성에 들어갈제, 구호를 외치면 모두들 따라하는디,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 어떤 농부차림 사내 하나가 실컷 따라서 구호를 외쳐놓고는 뭐가 미심쩍은지 “찢어 죽이는 건 찬성인디, 전두환이가 누구여?” “아따 이사람 이북서 넘어왔는가? 얼마 전에 박정희 죽었을 때 뭔 수사본부인가 한다고 테레비 나와서 설쳐대던 놈 있잖여?” “잉? (대머리 벗어진 시늉을 하며) 이눔 말이여? 긍께 이눔이 정권을 먹겠다고 공수부대를 내려보냈다 이 말이여? 저런 건방머리 시어터진 놈 같으니...” 설왕설래 했것다.
그때여 계엄군은 탱크부대가 진을 치고 공수부대가 앞쪽으로 배치되어 돌격 명령을 기다리니 일촉즉발 위기가 감돌 적에, 빠앙! 빵 빠앙!
중중모리
이때여 유동 쪽에서 수백대 차량들이
헤뜨라이트 올려키고 경적을 울리면서
금남로로 들어온다.
십이톤짜리 대형트럭 선두에다 세우고
고속버스 시외버스 영업용 택시들 뒤따를제,
트럭 위에 청년들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태극기 흔들며
“여러분 뒤를 따르시오. 군 저지선을 돌파합시다.”
일진일퇴 공방전을 한나절이나 전개한다.
아니리 - 이름하여 제 1차 금남로 전투라.
흥분한 시민들은 방송국을 점거하고 “밖에서 일어난 참상을 사실대로 보도하라 이 말이여.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디 가랑이 벌리고 흔들어대는 꼴이나 내보내는 것이 방송이여?” 항의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을 질러 버렸구나.
이때여 어떤 여인 하나 확성기를 들고 외치며 다니는디 “시민 여러분, 우리 광주시민을 몰살하려는 계엄군놈들을 몰아냅시다. 우리는 맨 주먹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이 여인이 바로 광주항쟁의 여걸로 알려진 전옥주라는 여인이라.
잦은모리
새벽 두 시가 넘도록 가두방송 계속하니
수천명 시위대가 뒤를 좇아 행진한다.
양동 복개상가 거쳐 광주천변 따라가
무등경기장 경유, 광주 신역에 집결할제
다섯 갈래 도로마다 경계가 삼엄하구나.
한 청년 트럭에다 드럼통을 잔뜩 싣고
휘발유 가뜩 채워 불을 얼른 붙인 후 전속력으로 질주!
계엄군 전방 20m에서 차창 밖으로 탈출,
트럭은 그대로 돌진!
바리케이트 부수고 역전 앞 분수대에 쾅! 펑!
불기둥이 치솟는다!
또 한청년 트럭에다 드럼통 잔뜩 싣고
불을 얼른 붙인 후 전속력으로 질주!
바리케이트 부수고 분수대에 가서 쾅! 펑!
필사적으로 공격을 하니
계엄군 하릴없이 퇴각을 하는구나.
아니리 - 이 때가 새벽 4시라. 이름하여 신역 전투렷다.
이 날 새벽부터 광주로 통하는 시외통화가 완전히 끊기고, 고속버스 열차 도 통행이 막히고, 방송과 신문의 편집도 중단이 되었는데, 그날사 계엄사는 “광주에 폭동이 일어났다!” 하고 발표를 했것다. 허나 광주시는 이미 계엄군의 통제를 벗어나 시민 공동체를 이루어내고 있었으니
평중모리
아침부터 주민들이 주먹밥을 만들어서
시위차량 지나가면 한 함지씩 실어주고
양동시장 대인시장 학동시장 산수시장
서방시장 아줌마들 길목마다 조를 짜서
김밥에다가 주먹밥, 김치에다 계란에다, 음료수에 빵에다가
갖가지 음식을 길바닥에 늘어놓니
한 청년 주먹밥을 두 손에 받아들고 한 입에 먹더니만
“아짐씨, 고맙소 잉. 내가 저 상녀러 공수놈들
그냥 싹 몰아낼텡께 염려놓으쇼 잉.“ 다짐하니
한솥밥에 한 식구라.
아니리 - 이때여 광주시내 병원이란 병원은 모다 피가 모자라서 헌혈을 하려는 사 람들이 줄을 지어 늘어섰는데, 적십자 병원에는 웬 아가씨들이 단체로 몰려와 헌혈을 자청할제, 속눈섭에 입술연지 메니큐어 보아하니 황금동 술집 아가씨들인지라. 병원 당국자 난처하여 “호의는 감사하지만 보건 위생상 쪼끔 곤란하고만요.” 아가씨들 화를 내어 눈섭을 치켜뜨고 입술을 뾰로통 해갖고는 “아니 시방 이 급한 참에 보건 위생이 다 뭣이다요? 우리 피도 깨끗혀요. 검사 해볼라면 해보시오.” 들이대니 헌혈을 받았것다. 사용 여부는 확인이 안 되었지만...
한편 이 날 시내 곳곳에서는 도민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격문과 전단들이 긴급히 살포되는데 “하늘이여, 이 원통하고 피맺힌 민주시민의 분노를 아는가? 삼천만 애국동포여, 이 억울한 죽음의 소리가 들리는가? 애국시민이여 애국근로자여 애국농민이여. 승리의 그날까지 전 도민은 매일 정오를 기하여 전남도청앞 광장으로 모이자.”
잦은모리
광주의 전 시민이 도청으로! 도청으로!
집결하니, 그 숫자 30만이라!
그때여 도청 상공 군 헬리콥터들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내려왔다 올라갔다
때아닌 애국가가 울려퍼지더니
갑자기 총소리 탕! 탕! 탕 탕!
선두에 선 사람들 꼬꾸라지고 넘어지고
시위대열 일순간에 좌우로 물결처럼 좍! 갈라진다!
“저 놈들이 발포를 했다. 우리도 총이 있어야 한다.”
시위대 차량들이 광주시를 빠져나가
총기에다 탄약에다 실탄을 확보하여 도청 앞으로 다시 집결!
총격전을 벌이니 시민군이 예로구나
엇모리
계엄군 거동 봐라 계엄군 거동봐라
관광호텔 전일빌딩 요소요소 건물마다
매복 은폐하야 조준 사격할제
하늘엔 헬리콥터 위세 부리더니
돌연 저공비행, 기총소사 가한다.
시민들 황겁하야 건물 속에 숨을제
시민군 거동봐라
특공대 조직하야 계엄군에 맞선다.
LMG 기관총을 어깨에 메고
전남의대 부속병원 옥상으로 올라
도청 내부를 향해 기관총을 설치
가늠자 세워 목표를 조준
왼손으로 받침목 잡고 오른손으로 방아쇠
숨을 한번 들이쉰 후 바싹 잡아당기니
따따따따 따따따따 연속발사 되는구나.
빠른 엇모리
계엄군 거동봐라 계엄군 거동봐라
장갑차 한 대가 퇴로를 확보터니
군용트럭 십여대가 재빨리 도망치고
경찰국 간부들은 도청 뒷담을 넘어
허겁지겁 달아난다.
“만세 이겼다!”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되찾았다.”
“광주시민 만세!”
“해방광주 만세!”
아니리 - 계엄군을 몰아낸 시민군은 곧 외곽지역마다 주민들로 하여금 자체 무장을 하여 경계케 할제, 그날 밤 시민군의 암구호는 ‘담배 - 연기’라. 연락찝차를 이용해서 외곽지역들로 즉각즉각 전달되었것다.
세마치
이날 밤 계엄군은 20사단을 증파하고
광주지역을 봉쇄할제,
송정리 방면은 화정동에서
화순 방면은 지원동에서
목포 방면은 대동고 앞에서
여순 방면은 문화동에서
31사단쪽은 오치에서
장성 방면은 동운동에서 차단하고,
교도소 일대를 엄중 경계하니
광주시는 고립무원이로구나.
아니리 - 이튿날 동이 트니 해방광주 첫날이라. 시민군들 트럭에 올라타고 시가지 를 누비난디, 시민들 환호하며 청량음료 드링크제 박스로 올려주고, 담배도 몇 보루씩 올려주며 시민들을 맞이하것다.
이날 아침부터 도청앞으로 앰블런스 차가 들락거리더니 사망자 시신을 분수대 앞에 일렬로 눕혀놓는지라. 소식없는 자식을 찾아나선 가족들이 허둥지둥 달려올제,
진양조
시신들을 늘어놓고 무명으로 덮었난디
검붉은 핏자국이 얼룩져 배었구나.
무명천을 들쳐보니 머리통이 깨진 사람
얼굴이 뭉개지고 손과 발이 잘리우고
내장이 터져나온 사람
너무도 참혹하여 눈 뜨고는 볼수 없네.
확인하던 가족들이 울음을 삼킬 적에
중중모리
어떤 아낙 한사람 떴다 절컥 주저않으며
“아이고 이게 누구여. 내 새끼가 죽었네.
엊그제부터 소식없어 행여 마음 조렸난디
여기 와서 누웠다니...
예이 인두껍을 쓴 놈들아,
국군이 되야 제 나라 백성을 이리 죽인단 말이냐?”
시신을 부여 안고 방성 통곡을 하는구나.
아니리 - 한편 이 날짜로 신현확 내각이 사임하고, 테레비와 라디오에서는 광주 사태를 왜곡하여 계속 선무방송을 내보내니, 고립된 광주시민들은 더욱더 울화통이 터질 적에,
잦은모리
이때여 윤상원은 들불야학을 중심으로
문화패 합류하여 투사회보를 제작할 제,
문안 작성조에 필경조 등사조에 배급조 나누어서
투쟁 소식을 알려주고 행동 지침을 전달,
궐기대회 홍보하고 투쟁구호를 제창!
문화선전대 이 아니냐.
아니리 - 이렇듯 하루가 지나고 해방광주 이틀째가 되었난디
평중모리
시민들이 동 단위로 수백명씩 집결하여
도청 앞으로 행진한다.
플래카드 치켜들고 피켓을 흔들면서
줄을 지어 들어올제,
도청 주변 담벼락엔
울긋불긋 그림들과 구호가 걸렸난디,
“비상계엄 해제하라” “유신잔당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노동 3권 보장하라”
“광주를 사수하자” 깃발처럼 펄럭인다.
아니리 - 이 날 광주시 유지들로 구성된 5.18수습대책위원회는 일방적으로 무기 회수를 결정하고, 학생위원장 김창길 등이 회수된 무기를 계엄사에 반납하자 계엄사는 연행된 시민 일부를 석방하였것다. 이것이 모다 계엄군측 계략이라. 윤상원 박효선 등 청년 문화운동권의 핵심들은 무기 반납을 막고 광주시민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군중집회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제1차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할제, 각계각층 시민들이 분수대 위로 올라 성토를 벌이난디 그 중 하나만 소개 할작시면,
단중모리
시민 여러분 우리가 지금 무엇땜시 여그 모였소
사람 목숨을 파리 죽이듯 하는
폭압적인 군부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이리 모였소.
시민 여러분 우리 똘똘 뭉쳐
끝까지 광주를 사수합시다.
아니리 - 그 외에도 성토한 사람이 수십명이지만 시간 관계상 생략하고...
이때여 군 헬리콥터가 도청상공을 날면서 삐라를 뿌리는디,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필체가 엉망이라. 하도 개발새발(괴발새발) 써놔서 장단 붙이기가 불능이라, 그냥 한번 읽어보는데 “시민 여러분, 소요는 고정간첩 불순분자 폭도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대열을 이탈, 집과 직장으로 돌아가십시오.” 시민들 삐라를 주워보고는 하도 기가 차서 헬리콥터에다 대고 욕을 하는디, 여기 전라도에 수백년 전승되어온 묵은 욕이 튀어나왔던가 보더라. “저 저 시벌 놈의 잠자리비행기 날개쭉지부텀 분질러놔야 쓰것고만.” 삐라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다가 그도 성이 안찼던지 발로 짓뭉개 버렸것다.
이렇듯 또 하루가 지나고 해방광주 사흘째가 되었난디
세마치
수습대책위원회는 계엄분소를 방문하여
8개항을 협상하고 돌아오니
대다수 시민들은 불만이 팽배쿠나.
오늘도 도청 앞에서는 궐기대회가 개최될제
수습위는 냉담한 반응이라.
분개한 청년들 단상으로 오르더니
“학살 책임자 처단하라”
“피의 댓가 보상하라” 외칠적에
갑자기 후드드드득...
군중들 비를 피하느라 우왕좌왕 소란하니
사회자 심정도 처연해져
“지금 이 빗방울은 원통히 가신 영령들이
흩뿌리는 눈물이요.”
겨우 진정 되는구나.
아니리 - 한 청년 비를 죽죽 맞으며 피를 토하듯 처절하게 낭독하는데, “동포여, 민주제단에 흩뿌린 광주시민의 피를 헛되이 하지 마소서. 이 땅에서 영원히 독재를 추방하고 참된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하기 위해, 우리 80만 광주시민은 핏빛 물들은 아스팔트 위에, 무참히 죽어가는 시쳇더미 위에 죽음으로써 함께 모여 외칩니다. 삼천만 애국동포여, 모두 일어서라! 그리하여 이 땅 위에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이제는 다시 빼앗길 수 없는 찬란한 민주의 꽃을 피우자.”
한편 이날 도청 상황실에서는 학생수습대책위가 열렸으되, 강경파와 온 건파 아니 투쟁파와 투항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김창길이 말하기를 “무기를 반납하지 않으면 계엄군은 무력으로 진압하겠다고 공식으로 통보해 왔소.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면 광주시민 모두가 몰살당할 것이니 한시라도 빨리 무기를 반납해야 하오.” 김종배가 반론하되 “지금 이 시점에서 무기 반납이란 광주시민의 피를 팔아먹는 행위요. 우리의 요구사항은 한가지도 관철된 것이 없는데, 무조건 무기를 반납하고 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소.” “계엄군을 일단 믿어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지 않소?” 이렇듯 갑론을박 하던 차에
단중모리
이때여 한 청년 화를 내어
두 눈을 부릅뜨고 의자를 번쩍 들어
냅다 집어던지며 고함을 버럭!
“시방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계엄군을 믿는다고...
바로 어제까지도 무죄한 시민을 학살한 것이 누구인데,
만일 이런 따위로 무기를 반납, 무조건 항복을 할 양이면
차라리 도청을 폭파하고 자폭해 버리겠다.“ 달려드니
투항파는 겁을 먹고 안절부절 못하는구나.
아니리 - 이 사람이 바로 상황실장으로 후에 시민군 총 지휘관의 임무를 맡게 되는 박남선이라.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해방광주 나흘째가 되었는데, 도청내의 분위기가 점차 강경한 투쟁 쪽으로 선회함을 감지한 계엄당국은 도청 내부를 교란할 목적으로 갖가지 공작을 기도하더니 이 날 아침 소위 독침사건을 조작하였것다. 도청 안이 뒤숭숭한 가운데, YWCA 2층에서는 청년운동권의 정상용 윤상원 등이 광주 재야 운동권의 민주인사들을 모시고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할제, 교수님 한 분이 호소하되
중머리
“청년들은 들으시오
어쩌다가 우리 광주 이런 변을 당했는지
하늘도 무심하고 원통하고 분하여라.
그리허나 여보게들, 무고한 시민들이
더 이상 피를 흘려서는 아니되오.
부디 무기를 회수해서 엄청난 참변을 막아주오.”
청년들이 이 말 듣고
“어르신네 듣조시오.
무기를 먼저 반납하면 협상에 절대 불리하오.
몇일간만 더 버티면 저들이 먼저 붕괴되오.
그리허니 어르신들, 싸움은 우리 청년들이 앞장서 할 것이니
부디 우리를 지원해서
그렇게도 염원하던 민주화를 이룹시다.”
아니리 - 이렇듯 서로 간곡히 호소하니 결론을 못 내리고,
이 날도 투항파의 무기 회수 노력이 집요하게 계속되는 중에, 이날 오후 3시 궐기대회가 속개될제 시민군 대표가 나와 연설을 하는디, “우리는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너무나도 무자비한 만행을 더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내 고장을 지키고자 이 자리에 모인 민주시민 여러분, 잔인무도한 만행을 저지른 계엄군이 폭돕니까 내 고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우리 시민군이 폭돕니까? 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은 여러분의 안전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또한 협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면 우리는 즉각 총을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잦은모리
이 날 밤 도청에서는
청년권 주도하야 투항파를 구축하니
수습위는 해체되고 투쟁위원회가 새로 결성되는구나.
위원장은 조선대생 김종배가 맡고
내무담당 부위원장 허규정이가 맡고
외무담당 부위원장 정상용이가 맡고
대변인은 광대출신 윤상원이가 맡고
상황실장 골재업자 박남선이가 맡고
기획실장 김영철 홍보부장에 박효선
민원실장 정해직이 조사부장에 김준봉
보급부장 구성주 이같이 선임하니
광주 민중 민주항쟁 지도부라.
도청 내 경비대를 대학생 병력으로 전격 교체하고
장기적인 대치 상황 대비키로 하는구나.
아니리 - 한편 이날 밤 과도정부 최규하 대통령은 KBS 라디오와 텔레비를 통해 광주지역에만 3차례에 걸쳐 특별담화를 발표하는데, 뭔 장단으로 발표를 해야할지 혼자서는 결정권이 없었던가보더라. 국가보위비상대책회의라 하는 데다 문의를 하여놓니 “거 휘몰이로 몰아서 싹 쓸어버리는 것이 어떻겠소?” 이런 주문이 있는가 하면, “거 진양조로 길게 늘여서 슬픔을 좀 자아내 주시오.” 이런 주문도 있거날, (대머리 벗겨진 시늉을 하며)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결론을 내리는데, “성왕의 체통을 살려 엇중모리로 나가되 협박과 회유를 적절히 배합해 주시오.” 이렇듯 회유조로 협박을 하여놓니 엇중모리로 나가는데,
엇중모리
광주 시민 여러분, 나는 대통령 최규하요.
이번 사태로 인해 얼마나 슬프시오.
원인이야 어쨌건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 안보가 위태롭소.
북한 공산 집단이 악용하면 어쩔테요.
야만적 대결보다 대화로써 해결하는 문화 국민이 됩시다
광주 근교에서 대통령 최규하...
아니리 - 이렇듯 또 하루를 보내고 해방광주 닷새째가 되었는데, 새벽부터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었던가 보더라.
휘모리
새벽 다섯시경 상황실 무전기가
삐삐삐삐 타신을 보내온다.
여기는 농성동, 지금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진입하오.
도청이 발칵 뒤집히더니만
비상! 전 병력 출동 준비!
시민군 출동하여 농성동으로 질주!
계엄군 탱크와 대치하는구나.
아니리 - 계엄군 장교가 썩 나서더니 “불순분자를 제거하고 총기를 전부 회수하여 반납하고 해산하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어떠한 사태에 대해서도 군은 책임질 수 없다.” 상황실장 박남선이 큰 소리로 응하는디, “병력을 원 위치로 후퇴시키라. 그렇지 않으면 회수된 무기를 전 시민에게 다시 나누어주고 끝까지 싸울 것이다. 그래도 진입하면 보관중인 다이나마이트를 전부 폭파시켜 버리고 자폭할 것이다.” 말은 그리 했으되, 시민군이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할 리 있것느냐? 겁을 주느라고 그랬것지.
중중모리
민중항쟁 지도부 행정업무를 집행할 제,
기획부는 모든 업무를 총괄적으로 조정하고
민원부는 사상자의 인적 사항을 정리하고
조사부는 시민질서 교란 사범을 관장하고
홍보부는 궐기대회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보급부는 시민군의 물자 식량을 비축하고,
대변인 거동보소. 기자 회견을 개최하야
집행부 결정사항 대내외에 선전.
상황실은 기동타격대 신설하고 계엄군 동태파악
연락업무 담당하니 체계가 정연하구나.
아니리 - 항쟁지도부는 광주시장에게 매일 백미 한가마와 부식 연료를 공급할 것과 사망자 장례를 도민장으로 할 것을 합의보고, 이어 정부에 요구하는 ‘80만 광주시민의 결의’를 채택한 후 다시 궐기대회를 개최할제, 군중 수는 전일보다 다소 줄었으되 열기는 못지 않은지라. 구호들을 외치는데, “학살 책임자 처단하라” “피의 댓가 보상하라” “무기 반납 결사 반대” 함성이 요란할제,
이때여 계엄당국은 부지사를 통해 계속 최후통첩을 보내거날, 무력진압을 강력하게 시사하는지라. 항쟁지도부 별수 없이 이러한 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하는데, “시민여러분, 오늘밤 계엄군이 공격해올 것 같습니다. 시민여러분, 흩어지지 말고 비상사태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양조
광장의 분위기가 일시에 가라앉더니만
침묵이 깔리는데
지난 며칠 겪은 일이 일순간에 다가온다.
공수부대에 무참하게 맞고 찔리고 당하던 일
시민 모두 일어나서 맨몸으로 대들던 일
주먹밥 받아들고 한 입에 먹던 일과
계엄군들 몰아내고 만세 외쳐 부르던 일
해방광주 그 날들이 물거품이 되단말가.
궐기대회는 끝났건만 그 자리에 붙박힌듯
망연히 앉았구나.
아니리 - 날이 점차 어두워져갈 무렵, 시민들 서서히 일어나 시가행진을 벌이는데, 한전 앞까지 나가 계엄군과 잠시 대치한 후 다시 돌아오니 어둠이 완전히 내렸것다. 그새 군중들은 거의 흩어지고, 남은 사람은 불과 2백여 명이라.
이때여 도청 안에서는 부지사와 수습위원들이 학생들에게 피신을 권유타가 도망치듯 도청을 빠져나가고, 이제 남은 사람들끼리 여성부에서 준비한 식사를 마지막으로 함께 하니 ‘최후의 만찬’이라. 식사를 마친 후 윤상원 일어서며 “이제 최후의 결전의 시기가 왔소. 어린 고교생들과 여성들은 밖으로 피하시오.” 어떤 고등학생 하나 울부짖으며 “우리 누나가 공수놈들한테 잔인하게 학살되었소. 원수를 갚고야 말 것이니 함께 있게 해주시오.” 윤상원 기가 막혀 “너의 심정은 알것다만 살아남아 증언할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너는 꼭 살아서 너의 형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중머리
후세 만대에 전해다오.
아니리 -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았것다. 끝까지 남은 사람들 면모를 볼작 시면, 거의가 일용노동자에 소상인 종업원 등 근로빈민층이 주력이라. 광주 항쟁의 주체세력은 학생에서 시민으로, 그리고 노동민중으로 옮겨갔것다.
진양조
사방은 칠흑같이 쥐죽은듯 적막할제
시민군들 어느 결에 총을 꼭 껴안고는 살풋 잠이 들었구나.
그때여 윤상원은 초조한 마음을 달래느라 담배 한 대 피워무니
지나간 젊은 날들 회한이 밀려온다.
들불야학 아우들과 동고동락 하던 일과
광대패 벗들과 마당판을 꾸미던 일
녹두서점 선후배와 전민노련 조직코자 밤새워 토론한 일
이제와 생각하니 두 눈에 눈물이 핑! 돌더니 쭈루루루루루...
눈물 씻고 일어나서 밤하늘 바라보며 다짐을 하는구나.
아니리 - “이 싸움은 분명 패배요 전멸당할 것이지만, 그냥 이대로 총을 놓고 항복 하기에는 지난 항쟁이 너무나 장렬했다. 항쟁을 완성시키자면 누군가 여기 남아 도청을 사수하다 죽어야만 한다. 나는 그 길을 택하리라.”
이때여 어떤 여학생 하나, 홍보차량에 올라 시내 전 지역을 돌면서 가두 방송을 하는데, “시민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숨져가고 있습니다. 시민여러분, 모두 일어나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멀어지며)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애절한 울부짖음에 광주시민 모두 잠을 못 이루고 일어나 깨어있을 적에, “비상-----! 비상-----!”
잦은모리
새벽 2시 30분경 계엄군 진입한다.
외곽에서는 포성소리 지척(咫尺)에 들리난디
조명탄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히더니
탱크를 앞세우고 계엄군 진입한다.
지원동에서 광주천, 학동에서 전대병원
백운동에서 한일은행, 화정동에서 양동
서방에서 계림국교 압박해 들어올제
누구든 얼씬거리면 무조건 사살이라.
새벽 3시 30분 계엄군 장갑차가 금남로로 진입,
도청을 사방에서 포위----- 써치라이트 확!
아니리 - “폭도들에게 경고한다. 너희는 현재 완전히 포위되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탕! 쨍그렁!!!
엇모리
총성 한발 울리더니 탐조등 유리창을 박살을 내는구나.
캄캄한 어둠속에 중무장한 계엄군의 일제사격 개시된다.
자동화기 콩 볶는 소리 천지가 진동,
공수대원 일개조가 도청 뒷담을 넘어
시민군 등 뒤에서 무차별로 난사한다.
또다른 공수대원 창문 턱까지 접근, 수류탄을 투척한다.
또다른 공수대원 화염방사기를 광폭하게 분사한다.
대항하던 시민군들 실탄마저 바닥이라
하릴없이 죽어갈제,
희뿌우연 연기 속에 어슴---프레
새벽이 동터 오는구나.
시 낭송
부당한 외세의 침탈에 능욕당한 조국을
압제자들의 총칼에 피묻은 역사를 온몸으로 보듬고,
능지처참의 학살을 넘어
찢겨진 산하, 무진주의 가시밭길을 넘어
일가친척도 없는 단신으로 맞는 그대!
죽음이여 부활하라
학살이여 그 주범을 단죄하라.
하여 이 땅의 민중이여
오월의 넋이, 광주의 죽음이
청사에 길을 여는 죽창으로 부활하는 그 날까지
일어서라! 투쟁하라! 쟁취하라!
산자여 따르라!!!
(노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